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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숲에서 만난 세상

성균관을 지키는 은행나무 이야기


조선시대 인재양성의 요람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드라마를 통해서도 많이 소개된 바 있는, 명실공히 조선시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가장 많이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


[성균관 명륜당] (사진 : 문화재청)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한 성균관은 현재의 국립대학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는데요, 지금은 문화재로서 공자 제사와 각종 전통행사 등이 치러지는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성균관 주변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어요. 흔히 볼 수 없는 노거수로서, 사람 키의 두 배는 훨씬 넘는 은행나무들이 그것입니다. 

성균관 내에는 행단을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총 네 그루가 있습니다. 행단이 무엇이냐고요? 행단(杏壇)은 공자가 중국의 사수라는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터를 가리키며, 은행나무가 있는 단 또는 살구나무와 앵두나무가 있는 단을 뜻합니다. 그래서 공자묘나 공자 사당에는 대개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사진 : 문화재청)

성균관 문묘(文廟)의 명륜당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로 불리어 지는데요,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 함께 심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
(※ 문묘 :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나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 )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사진 : 문화재청)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그래서 유교와 관련 있는 건축물 근처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요, 지난번 소개해 드린 전주 경기전의 은행나무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답니다. (전주 '경기전'과 그곳의 은행나무 이야기)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사진 : 문화재청)

‘서울 문묘 은행나무’는 웅장한 모습이 특징이에요. 바라보기만 해도 그 모습에 압도(?)당할 만큼 위풍당당한 풍채와 왕성하게 발달한 가지가 눈에 띱니다. ^^

최근 성균관 내에는 명륜당 앞에 있는 은행나무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은행나무가 또 있습니다. 바로 문묘의 정전인 대성전 앞뜰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그것인데요, 오는 3월에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성균관 대성전] (사진 : 문화재청)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신삼문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자리해 있습니다. 가슴 높이에서 잰 직경만도 동편의 은행나무는 2.41m, 서편의 것은 2.74m로 측정될 만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요.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수령을 측정한 결과 약 500년 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니, 문묘 은행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심어진 게 아닐가 싶어요. ^^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 동편] (사진 : 서울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송자대전’ 등의 사료에 의하면 조선중기 대사성과 동지성균관사를 역임한 윤탁(1472~1534)이 성균관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해요. 이 시기가 은행나무의 수령 측정결과와 부합하고 있어 기록상의 은행나무와 대성전의 은행나무가 같은 나무일 거라고 여겨지고 있어요. 

    동지관사 윤탁(尹倬)이 행단(杏壇) 제도를 모방하여 손수 문행(文杏 은행) 두 그루를 강당 앞뜰에 심었는데, 해마다 열매가 맺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썩은 냄새가 매우 나쁘고, 또 수복들이 따라 다니며 줍느라고 문묘 뜰에서 떠들어, 성균관의 한 관원이 제사드리며 미안한 뜻을 고하니 이로부터 다시 열매를 맺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괴이하게 여겼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권 비고편 -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 서편] (사진 : 서울시)

500년의 세월 동안 이 나무에게도 시련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숙종 37년(1711)부터 헌종에 이르기까지 비바람을 맞아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을 당했다고 해요. 그런데 위안제를 지내며 국가적으로 보호를 했고, 이러한 보호와 관리 속에 500여 년간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성균관을 지켜왔던 것으로 보여요. 역시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내고 자란 나무들은 사람의 손길과 관심이 함께 했었나 봐요. ^^


성균관 문묘와 대성전의 은행나무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학교 정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보면 바로 볼 수 있어요. 날씨도 풀리는 요즘, 나들이 겸 명륜당 근처를 거닐며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포털 동영상 / 문화PD의 문화 미스터리 - 성균관 은행나무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