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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임업인 인터뷰

연 매출 3억원의 비결을 말하다. 천안황금표고버섯농장 황성태 대표



드림이 : 안녕하세요~ 오늘은 3억 원 매출 천안 황금표고버섯농장 황성태 대표님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성태 : 반갑습니다 황금표고버섯농장 황성태 대표입니다.

드림이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고버섯 재배에 좋은 나무는 뭐가 있을까요?

황성태 : 표고버섯 재배에 참나무를 으뜸으로 칩니다. 참나무를 베어 자연 건조한 다음 미터 남짓 일정한 크기로 잘라 표고버섯 재배에 사용해요. 맛과 향이 일품인데다 입안에 오래 남습니다. 북한에선 표고버섯을 참나무 버섯이라고 불러요.

한국 참나무는 종류도 많고, 잘 자라기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요. 때문에 국산 표고버섯도 단연 최고로 인정받습니다.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미국식품의약국)가 권장하는 세계 10대 항암식품에 우리나라 표고버섯이 포함될 정도!




명품 표고버섯 평생을 바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2/3가 산림인데요. 산림을 대표하는 나무가 참나무이고, 그 참나무로 재배하는 표고버섯은 명품으로 인정받으며 중국산과 일본산을 앞서고 있죠 황성태 황금농장 대표는 표고버섯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명품 표고버섯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에요. 표고버섯 재배의 노하우와 우량 종균 보급으로 국산 표고버섯의 품질을 혁혁하게 높였습니다.

황성태 : 저는 표고버섯농장이 곧 집이고 생활터전이에요. 실제로 농장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집으로 삼고 그곳에서 먹고 잤습니다. 그곳에서 사무도 처리하고 거래도 하고 사람들을 상대했죠. 1984년부터 30년 넘게 그렇게 살았어요. 버섯 재배에는 습기가 생명이라 습기를 유지하려면 수시로 지켜봐야 해요.

드림이 : 버섯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세요. 황성태 대표님은 산과 버섯이 전부인 거 같네요 ^^


황성태 : 저는 단지 표고버섯만 재배한 것이 아닙니다. 표고버섯도 여느 작물과 마찬가지로 아이 키우듯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축적된 기술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재배 노하우가 없으면 정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게 돼요.

황성태 대표는 돈을 버는 족족 더 나은 버섯 재배를 위한 시설투자와 연구에 죄다 쏟아부었어요. 오로지 더 좋은 버섯 재배를 위한 기술 개발에 앞장서 왔고 그 결과로 특허도 출원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 표고버섯을 초토화시켰던 버섯파리 방제기술도 황성태 대표님이 개발했습니다


황성태 대표의 삶

황성태 대표가 지금은 버섯에 살고, 버섯에 죽는 삶이지만 서른여섯 살까지는 전혀 다른 삶이었어요.
황성태 대표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어릴 적에 전쟁을 겪었고 이후 가난의 연속. 충청남도 공주 깡촌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모진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일찌감치 뛰쳐나왔어요. 이후 천안 일대에서 먹고살려고 닥치는 대로 일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시작한 일이 기성복 총판. 서울 평화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어다가 천안에서 파는 일이었습니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직물공장도 했어요

황성태 : 힘들었지만 가정을 지키고 꾸려나간다는 일념 하에 버텼어요. 악착스럽게 일에 매달렸죠. 그때부터 ‘황금’이란 상호를 사용했습니다. 저의 성인 ‘황(黃)’과 아내의 성인 ‘김(金)’을 딴 것이죠. 지금도 출퇴근을 함께 하면서 24시간 붙어 지내요 하하 

드림이 : 정말 금실 좋은 부부시네요 ^^ 표고버섯을 재배한 계기가 뭔가요?

황성태 : 서른여섯 살 때부터 일 거예요. 혈압도 나빴고 다른 장기도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아요 아직 젖도 안 뗀 갓난아기도 있었는데.. 저는 건강을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산에 올랐어요. 표고버섯이 좋다 해서 표고버섯을 구해먹었어요. 열심히 표고버섯을 먹다 보니 맛도 좋지만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돈이 될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였죠

드림이 : 어떻게  버섯을 잘 키우셨어요?

황성태 : 딱히 배우지도 않고 기술도 없었는데 튼실하게 키웠어요.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특히 표고버섯을 많이 사용하는 중국 음식점에서 수요가 급증했어요. 장사가 되니 자신감이 생겼고, 날마다 산에 오르면서 표고버섯을 먹으니 몸도 상당히 회복됐었습니다. 무엇보다 표고버섯 판매는 외상이 없고 현찰로만 거래가 되는 게 마음에 들었죠!!

황성태 대표님은 내친김에 아주 표고버섯의 길로 들어섰다. 그게 1984년. 마흔을 좀 넘긴 시절이었다

기본에 충실하고 창의적으로 행동

황성태 : 처음 2년 동안의 목표는 표고버섯 재배목 1천 본이였어요. 참나무 원목으로 만든 재배목 1천 개.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일수를 찍었어요. 그런 돈으로 재배목을 구입해 지게로 날랐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에 적합한 산으로 옮기는데 참나무 원목으로 만든 표고버섯 재배목은 무게가 족히 20kg 이상이에요

드림이 : 20kg 이상 상상만 해도 너무 힘드셨겠어요 ㅠ.ㅠ

황성태 : 2년 동안 재배목 구입, 산으로 이동, 재배, 채취, 유통, 판매를 혼자 다했습니다. 좋은 버섯을 공급한다는 입소문이 사방팔방으로 번지면서 주문도 크게 늘어났어요.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했기에 가능했습니다. 6차산업의 핵심은 기본에 충실한 것입니다. 


드림이 : 버섯은 비를 맞는 순간 말짱 도루묵이 되는데요. 버섯 재배용 비닐하우스도 드물던 시절이었으니 어떻게 고품질의 표고버섯을 공급했나요?

황성태 : 미국산 중고 냉장고를 버섯 재배용 저온저장고로 활용했어요. 냉장고 여러 대를 사들였고, 이를 보관하려고 컨테이너도 구입했어요. 그래서 항상 고품질의 표고버섯을 공급하는 게 가능해졌답니다.

이 버섯 저장고를 보려고 전국의 버섯 재배자들이 황성태 대표의 농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이미 황성태 대표님은 그 개념은 몰랐어도 6차산업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의적인 발상과 기술의 접목


황성태 :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전쟁도 겪는 바람에 중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어요. 그게 아쉽긴 해요. 버섯 재배도 교육을 받아야 해요. 요즘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죠. 많이 배우고 선진 재배장을 자주 찾아다녀야 합니다. 직접 보고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버섯 재배든 무슨 일이든 중간에 그만두려면 애초에 할 생각을 말아야죠. 사람이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개척한 명품 버섯, 명품인생


황성태 대표님은 수시로 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참나무 원목이 좋아야 표고버섯의 품질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깐요. 그렇기에 산림청과 지자체가 참나무 수요를 잘 예측해서 계획적으로 공급을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황성태 : 법과 제도의 문제로 산림을 활용하는 데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산림청이나 지자체가 잘 하리라 믿습니다.

요즘 황성태 대표님이 특히 관심을 갖는 건 중국산 버섯입니다. 중국산 버섯이 버젓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꼼수를 막으려고 앞장서 발품을 팔고 있어요. 국내 버섯농가의 생업과 발전을 위해서 누구보다 입바른 소리도 냅니다. 명품 버섯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장인으로서, 6차산업의 길을 닦은 선구자로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다하고 있는 황성태 대표님! 명품 인생이 따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