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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임업인 인터뷰

꾸지뽕과 사랑에 빠진 아낙네(장혜주)


 

                                                                                         



임업수기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꾸지뽕과 사랑에 빠진 아낙네

1999년 어머니께서 췌장암으로 소천하시고, 이듬해에는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연이어 힘든 일을 겪자 도시에서의 삶에 회의감이 들었고, 가족력도 염려되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 맑은 공기와 좋은 물, 산림 자원이 풍부한 청정지역을 찾던 중 전라북도 ‘장수’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장수고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진안고원’보다 해발이 더 높다. 장수 고랭지 작물은 시장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장수로 귀촌을 결정했다.


2005년, 덕유산 삿갓봉 아랫자락(장수군 계북면 어전리)에 10만여 평의 임야를 구해 개간하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부동산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임야를 구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농사도 모를뿐더러 임야를 개간하기 위해 무연고 분묘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애초 계획들이 다 미뤄지는 바람에 1~2년의 시간을 허비했다. 세상 물정을 몰라 사소한 것에서도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임야 정비가 마무리되고 나서 적정 재배 작목을 선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산약초 및 건강식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으로 발품을 팔고 다녔다. 꾸준한 시장의 요구와 작물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고려하면 ‘오디’와 ‘꾸지뽕’이 좋다는 조언을 얻었다.


꾸지뽕을 공부하려고 각종 논문을 찾아 읽고, 여러 농장을 견학하기도 했다. 실제로 꾸지뽕 열매, 잎, 줄기, 뿌리를 이용한 차, 오일, 음식들을 만들어 보았다. 나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고, '아, 이것이다!'하는 확신을 했다.


2.


2010년, 드디어 꾸지뽕 묘목 3,000주를 심었다. 여자 혼자서 장비 업자를 부리고, 인력을 수급하고, 퇴비를 운반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혼자서 악착같이 퇴비를 운반하다 보면 저녁에는 온몸을 파스로 도배해야 했다. 


내 인생의 꿈을 심는 마음으로 꾸지뽕나무를 심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희망의 웃음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오히려 일 할 욕심에 새벽이 오는 것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2013년, 꾸지뽕이 열매를 맺었고, 열매(생물) 위주로 판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가공 상품이 더 부가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꾸지뽕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해서 ‘천목’이라 불린다. 자양강장뿐 아니라 각종 여성 질환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꾸지뽕을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지, 어떻게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까 고민했다.


3. 


먼저 음식으로 소비자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천천면에 200석 규모의 식당이 매물로 나왔고, 일사천리로 계약하여 인테리어까지 마쳤다. 다른 식당과 차별화된 ‘산약초 건강 식당’이라는 목표를 표방했다. 꾸지뽕으로 반찬과 장아찌를 만들고 백숙(닭, 오리)과 각종 육수에 꾸지뽕나무를 활용하면서 조금씩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처음 음식을 개발할 때는 건강 산약초 밥상, 기능성 먹거리라는 잣대로만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의 입맛은 조미료 맛에 길들었고, 맛 평가에 호불호가 있어 대중에게 인기 있는 식당으로 거듭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 고민했다. 대중적인 맛도 살리면서 토속적이고 구수한 감칠맛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을까. 우리 고유의 장에서 해답을 찾았다. 기능성 꾸지뽕 장류(된장, 간장, 고추장)를 만들어서 소비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지금은 각종 학교, 동아리, 병원, 백화점 등 장수의 건강 산약초 먹거리를 찾아오는 발길이 나날이 늘고 있다.


4.


음식 개발 과정에서 이곳 산골 할머니들의 연륜에서 나오는 음식 솜씨에서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다. 꾸지뽕 식당을 운영하면서 마을 할머니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작게나마 고용을 창출할 수 있어 마음이 흡족하다.


꾸지뽕 농장 운영이 안정을 찾고 나서 마을 이장님과 어르신들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 영농조합을 창립해보자는 제의를 해오셨다. 나 혼자만 잘 될 게 아니라 이웃과 함께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승낙했다.


최근에는 차, 환, 젤리 등을 OEM으로 상품화하고, 효소 등의 2차 가공 상품으로 개발했다. 꾸지뽕 관련 상품들을 장수 지역 명품관에 전시, 판매한다. 이 상품들이 지역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소비자 호응도 늘어나고 있다.



여러 교육원과 농협, 농업기술센터, 작목반 등에서 내가 땀과 열정으로 조성한 꾸지뽕 농장을 방문하거나 강의를 요청한다. 꾸지뽕 농사와 소비자와 소통하는 건강 산약초 식당을 일궈온 이야기를 많은 임업인, 농업인들에게 전파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선도 임농가로서 교육과 강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또, 새로운 상품개발을 위해서 지역대학교와 산학협력으로 더 큰 미래를 향해 정진하고자 한다. 나는 꾸지뽕과 사랑에 빠진, 천상 꾸지뽕 아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