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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임업인 인터뷰

여성들을 산림경영으로 안내하는 성공모델이 되었으면(소현주)


 

임업진흥원 수기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여성들을 산림경영으로 안내하는 성공모델이 되었으면(소현주)

임업을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라 많은 사연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만큼 우리 산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을까 싶다.


나는 원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산은 나를 힘들게 하는 애물단지였다. 돈 먹는 하마인 산을 매입한 남편을 원망만 했었는데, 그 산이 나를 죽을 고비에서 살릴 줄이야.


우울증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던 나날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아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했다. 이유는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나의 특이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남편은 큰아들을 법학과를 보내겠다고 하고, 아들은 힘든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진로에 대한 이견이 생긴 게 발단이었다. 내가 먼저 법학공부를 해보고, 할 수 있는 공부인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방송대 법학과를 등록했다.



장학금까지 받으며 4년 만에 졸업했고, 아들은 법학과에 입학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복귀했으면 좋으련만,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것이 아까워 법무사 시험에 도전했다. 5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고시공부를 했다.


처음엔 응원하던 남편도 도가 지나치자 말리기 시작했다. 아들 역시 엄마가 바톤을 넘겨주지 않으면 내가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건강까지 나빠져 시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공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세를 부를 만큼 좋았지만, 2년 쯤 지나자 무료함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다른 것에 취미를 가져보려고 했지만,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우울증은 신체적 나이와 맞물리면서 정말 큰 질병이 됐다. 몸은 야위어가고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남편은 나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애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엄마 때문에 어려운 법학공부를 시작한 아들은 밤새워 공부하면서도 맘놓고 엄마의 따뜻한 밥 한 끼를 못 먹고 있었다. 이런 아들을 남겨놓고 무책임하게 죽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산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어떤 공부든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내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려운 법전을 달달 외울 때의 전율이 느껴질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공부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주에 있는 우리 산이 떠올랐다. 22년 전, 남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무주 오지에 있는 산을 사기 위해 나를 3년간 설득했다. 산을 사고, 빚 갚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렸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돈만 있으면 산에다 약 초를 심었다. 맨날 돈만 갖다 버린다고 애물단지로만 여겼던 산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 산에서 자라고 있는 약초의 효능을 공부하고, 건강 밥상을 차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 자치센터에서라도 강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꿈을 설정하고 나니 내 얼굴에 활기가 돌아오고 다리에는 힘이 생겼다.


처음 도전한 것이 약용식물관리사였다. 약선요리사를 배출하는 원광디지털대 한방건강학과를 거쳐 보건치유학 석사과정까지 졸업했다. 정말 원 없이 공부하는 바람에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산림아카데미 1기로 등록하게 되었고, 산림 분야의 많은 분들이 주는 도움으로 우리 산은 대변신을 했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우리 산에다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여성 산림경영관'을 만들고 싶다.


산림경영이라고 하면 대체로 나무를 심고 가꾸고,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뜯어 판다고 생각한다. 몸은 힘들고 돈은 안 되는 일 정도로 알고, 시골에 사는 노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인식되어 있다.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산림분야 정책이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노후를 활기차게 살고 싶은 여성들이 산림 쪽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좋은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여성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여성 산림경영관'


산촌에 가면 도심과의 소통이 제일 문제가 될 것 같아 SNS라는 말이 생소할 때부터 서울소셜이라는 곳을 다니면서 세상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산촌에서 생활해 보니 이곳에서 이렇게 신나게 살 수 있는 것은 그때 배워놓은 SNS기능과 스마트폰만 꺼내 들면 언제라도 1분안에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인것같다. 



밭 매다가도 사진 찍고. 밥 먹다가도 사진 찍고, 풀만 봐도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할머니들이 바빠 죽겠는데 웬 사진을 그리 찍느냐면서 볼멘소리를 하셨었다.


절임배추 주문도, 동네에서 물건 파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걸 아시고는 이제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신다. 한 할머니는 내가 올린 글을 읽어주는 걸 제일 좋아하기까지 하신다. 그야말로 문명하고 거리가 먼 산골 조그만 마을에 대변화가 감지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현지인과 잘 지내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서로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지은 분들은 누구보다 농사를 잘 지을 것이고, 도시주부들은 문명을 다루는 것 뛰어 날테니 첨단기기를 이용해 도심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


산촌에 여성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조금만 뒷받침을 해준다면 산촌을 살리는 데 최소의 비용으로 제일 큰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항상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내 마음 속은 꽉 차있다. 작은 것이라도 내가 먼저 현장에서 펼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지에 있는 집을 전세 놓아 자금을 마련하고 작년부터 이곳에 살면서 차근차근 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년쯤이면 뭔가 윤곽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내가 재미있어야 버틸 수 있으므로 숲 속 도서관은 꼭 하나 만들고, SNS 안테나샾도 만들고 싶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임산물 소득 모델과 여성 우울증 치료에 좋은 쉼터도 만들 계획이다.


그만큼 힘들게 살았으면 됐다고 말리던 남편은 태도를 바꾸었다. 도움되는 정보를 스크랩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니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꿈은 이루어 진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산림경영에 지칠 때도 있다. 돈은 계속 드는데, 소득은 커녕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시 수지로 갈까 하는 마음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산림 분야만큼 비전있는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고생해보자,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