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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임업인 인터뷰

초보 임업인의 쓰라린 봄(이호권)


 

 


 

임업수기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초보 임업인의 쓰라린 봄-산을 제2의 삶의 터전으로(이호권)


7년 넘게 일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돌아온 것은 불합격 메일이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이직시장이 위축되어 있었고, 일반 사무직의 이직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회사에서도 불합격 메일을 받고 나서 귀촌을 조금 더 앞당겨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


50대 초반에 회사를 퇴직하고 은퇴하게 되면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내려가 버섯을 키우는 것이 아내와 내가 계획한 미래였다. 몸이 약했던 아내는 버섯 등 자연식과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산나물과 약초들을 섭취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 자연이 선물하는 건강을 경험하게 된 아내는 귀촌에 긍정적이었다.


노후계획이 예상보다 앞당겨졌지만, 일찍 내려가면 그만큼 빨리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귀촌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고, 아내는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재취업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아내도 속앓이가 심했을 게다. 도전의식을 가지고 귀촌에 도전해보겠다고 하니 그 모습에 아내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2.


2013년 10월, 내가 먼저 부모님이 계시는 철원으로 내려왔다. 농사짓는 부모님께 얹혀서 시작하기보다 내가 계획했던 바를 내 손으로 해내고 싶었다.


부모님 밭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임야와 밭을 임대했다. 산이 있고, 바로 그 밑에 밭이 붙어 있어 내게는 매우 이상적인 땅이었다. 땅 주인은 분당에 살고 있었는데, 밭과 산을 함께 임대한다니까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주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산나물, 약초, 버섯을 야생성이 살아있도록 재배하는 것이 나의 구상이었다. 재배하기 힘들다던 노루궁뎅이버섯을 이제는 마트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연산 노루궁뎅이버섯을 맛본 사람이라면, 온실에서 재배한 것과 자연산의 맛과 향이 천지 차이라는 것을 안다.



산나물도 마찬가지다. 두릅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냉이나 달래만 해도 그렇다. 들에서 자생하는 냉이를 직접 캔 것과 온실에서 재배된 냉이는 향과 맛이 전혀 다르다.


물론, 온실에서 재배하는 것은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 소비가 가능한 것과 달리 야생에서 채취할 때는 채취량이 적어 많은 사람이 향유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내게는 장뇌삼이 방향키였다. 채취량이 극히 적은 산삼의 씨를 받아 산에서 키우는 장뇌삼! 장뇌삼과 마찬가지로 산나물이나 약초, 버섯을 직접 산에 파종하고 채취하면 되겠다 싶었다. 화학비료를 쓰거나 인공적으로 재배하지 않고 산채와 약초, 버섯을 최대한 자연산에 가깝게 기르자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작년 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 아내는 나를 따라서 삽을 잡고 호미를 잡았다.


3.


귀촌 첫해였던 작년에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산채와 약초들을 재배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먼저 군청에서 임산물채취허가를 받았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소량 채취하는 것이 아니란 판매가 목적이므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허가를 받은 뒤에는 산을 돌아다니면서 각 나물이나 약초들의 군락지를 파악했다.



씨앗 받을 녀석들을 남기고 일부는 채취해서 판매해보았는데 반응이 참 좋았다. 전 회사 동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준다는 심정으로 산채를 구매했다가 향과 맛에 반해 더 구매하기도 했다.


각종 산채 씨와 종자들을 잘 받아서 산에 파종하고, 매년 산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했다. 인터넷과 책을 뒤져가며 산채와 약초들의 종자가 맺히는 시기나 종자 채취 방법들을 찾아보고 기록했다. 고사리나 고비 같은 나물들은 포자로 퍼져 종자를 직접 구할 수는 없었다. 가을이 되자 다른 식물들은 생각보다 많은 종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4. 


이제 버섯이 남았다. 보통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버섯은 소독된 종균을 구매해서 배양한다. 이보다 더 야생에 가깝게 버섯을 재배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버섯을 대량 재배하는 농가, 농촌지도소나 기술센터 등에 문의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해외 사례나 논문도 검색했다. 인공재배에 대한 것은 많아도 야생에 종균을 뿌려 재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첫해, 첫 도전인 만큼 연구하고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표고와 능이버섯을 가지고 시도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야외에서 버섯 종균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하나의 수확도 없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 것을 알기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5. 


올해는 규모를 조금 더 키워 야생에서 재배해 볼 생각이었다. 목재도 더 구매하고, 버섯 종균도 많이 신청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앞산에 산불이 나면서 버섯용 목재에도 불이 붙어버렸다.



집채만큼 쌓여있던 나무들이 전부 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버섯을 키울 목재들이 전부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불을 끌 땐 정신이 없었는데 불을 끄고 나니 세상이 무너질 듯 했다. 이 아까운 나무들이 다 타버리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면 무너질 수 없었다. 나무들은 타버렸지만 내게는 아직 남은 것들이 있다. 지난해 받아두었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던 더덕을 다시 산에 심으면서 꼭, 이 산에서 성공할 거라고 다짐했다.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산채와 버섯, 약초를 내 이름을 달고 판매하는 그 날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귀촌해서 산으로 쏘다닌 지 1년 6개월, 아직은 초보라서 부족한 점도 많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올해 봄은 특히나 쓰리지만, 내년에는 따뜻한 봄을 맞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