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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숲에서 만난 세상

겨레의 망향가가 된 노래 '찔레꽃'


찔레꽃은 김영일(1914~1984년) 작사, 김교성(1901~1960년) 작곡, 백난아(1927~1992년)가 부른 노래입니다. ‘ 일제강점기란 시대적 상황을 노래한 우리 겨레의 망향가인데요. 우리나라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린 4분의 2박자 트로트 곡입니다.


노래가 나온 그 해 가수, 작사자, 작곡가가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의 명월대를 찾아 향수를 달래며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난아는 이 노래로 남인수, 백년설, 장세정 등과 함께 해방 전 우리나라 트로트 가수의 계보를 잇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 천리객창 푸른 별이 서럽습니다.


- 찔레꽃, 백난아 -

 


백난아가 처음 ‘찔레꽃’을 발표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6·25전쟁을 거치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노랫말은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민중의 노래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된 것인데요.


일설에 따르면 이 곡은 김교성과 백난아가 만주 공연을 다녀온 뒤 만주독립군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심정을 담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3절 가사에 북간도란 배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북방의 이국에서 남쪽나라 내 고향과 못 잊을 동무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소박하게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푸근하고 따뜻한 백난아의 창법과 잘 어우러져 한국적 정서와 망향의 아픔을 상징하는 가요가 된 것이죠.


 

지난 2005년 KBS-1TV의 ‘가요무대’가 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린 노래를 조사·발표했을 때 ‘찔레꽃’은 ‘울고 넘는 박달재’에 이어 2위를 했습니다. 이어 2006년 11월 6일 가요무대 1000회 프로그램에선 가장 많이 불린 곡으로 뽑혔고요. 


‘찔레꽃’은 일제강점기 때 발표된 곡이라 북한에서도 불리고 있는데요. 2001년 북한서 공연했던 가수 김연자 씨의 증언에 따르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전 애창곡이라고 합니다.


2007년 4월 2일 백난아의 고향인 제주엔 ‘찔레꽃 노래공원’과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제주시는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비를 한림읍 명월리 명월초등학교에 유적지 표석을 세우는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했는데요. 비 주변에 찔레꽃을 심고 ‘찔레꽃’ 노래가 늘 울려 퍼질 수 있게 고인이 불렀던 국민애창곡 7곡이 입력된 음향시설(6.6㎡ 규모 노래감상실)도 설치됐습니다.


660㎡ 규모의 공원 앞엔 국내 최대 팽나무군락지와 명월대가 있으며 찔레꽃과 감귤나무 등 유실수들도 심어져 있습니다. 그 부근엔 명월진성이 지방문화재로 보존돼있고요.



백난아씨는 1927년 산간마을인 이곳에서 오남보 씨의 3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나 ‘나그네 설움’을 부른 가수 백년설의 양녀

로 가수활동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한을 노래로 승화, 국민들 심금을 울렸던 그는 태평레코드사에서 활약할 때 고향을 ‘함경북도 청진’이라고 쓴 뒤 제주에선 잊혀졌죠.


1940년 12월 데뷔곡 ‘망향초 사랑’을 시작으로 ‘아리랑 낭낭’, ‘갈매기 쌍쌍’, ‘직녀성’ 등을 불러 유명해진 그는 1989년 마지막 음반을 끝으로 1992년 12월 65세의 나이로 서울서 별세했습니다. 


그는 고향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인물로 2005년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가 선정한 ‘근·현대 100년간 직업별 제주여성 1호’(언론·문화·체육분야 1호 여성)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찔레꽃(Rosa multiflora), 장미과 속하는 관목

노래 소재인 찔레꽃(Rosa multiflora)은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입니다.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야산에 퍼져있고 집 담장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흰색 꽃을 피우며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습니다. 지방에 따라 ‘뱀 꽃’이라고도 불립니다. 


전문가들은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 첫 소절 ‘찔레꽃 붉게 피는~’ 대목이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붉게 피는 찔레꽃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요. 간혹 있는 붉은 찔레는 흰 찔레가 진 뒤 6월초 꽃을 피우기 시작, 한 달여 2∼3cm 크기의 진분홍 꽃이 피고지기를 되풀이합니다. 키가 2m까지 자라고 수형조절이 쉬워 울타리로 만들기 좋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시중엔 일본산 붉은 찔레가 토종으로 둔갑, 거래될 만큼 멸종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글 왕성상(아시아경제신문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