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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숲에서 만난 세상

추석 송편, 솔잎에 찌는 이유는?



가사 문학의 최고봉,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에는 “장송(長松)을 차일 삼아 석경(石逕)에 앉았으니 인간 유월이 여기는 삼추(三秋)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이자 이상 세계를 뜻하는 것으로 쓰입니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많은 문학작품에서 절개와 굳은 심지, 맑은 마음 등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지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소나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솔방울을 쥐고 있던 디오니소스가 괴물 타이탄에게 먹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가 있지요. 서양에서도 소나무는 잡기를 물리치는 깨끗한 힘과 생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명절 추석과 소나무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데요. 차례상에도 올리는 음식 송편 때문입니다. 반달 모양으로 빚어내는 송편의 본래 이름은 송병(松餠)이었다고 해요. ‘소나무 송(松)’자에 ‘떡 병(餠)’자를 썼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송편이라고 바꾸어 불리게 되었답니다. 솔잎을 먼저 시루에 깔고, 시루 구멍을 덮은 뒤 그 위에 송편을 한 줄씩 놓고 쪄내는 방식 때문에 이름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가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들은 추석 때 먹는 떡에 소나무를 넣었을까요? 오늘은 추석의 상징 송편과 소나무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넣는 첫 번째 이유는 외형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일단 쪄낸 송편에 솔잎무늬가 새겨져 있으면 보기 좋죠. 또한 송편끼리 달라붙는 것을 방지해 본래의 송편모양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곱게 빚은 떡이 찌는 과정에서 다 붙어버리면 다시 떼는 과정에서 터질 수도 있고 외관상으로도 예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보다 솔잎을 넣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솔잎의 그윽한 향과 좋은 성분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소나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솔향 가득한 피톤치드입니다. 식물은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살균물질을 발산하는데 이를 통틀어 피톤치드라고 합니다.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는 죽이고 인간에게 해로운 병원균을 없애주는 일을 하는 성분인데요. 피톤치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균 등이 살 수 없도록 방부 효과를 내어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해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송편을 상온에 놓아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 먹을 수 없게 되었는데, 솔잎을 넣고 찌면 그런 걱정 없이 오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상님들은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백일해 병실 바닥에 전나무 잎을 흩뿌려 놓았더니 공기 중 세균이 90%가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고, 결핵균이나 대장균이 섞여있는 물방울 옆에 상수리나무의 신선한 잎을 놓으니, 몇 분 후 이 세균들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하니 피톤치드의 힘이란 대단하죠? 그중 소나무는 보통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하게 피톤치드를 발산하기 때문에 송편은 식물의 좋은 성분인 피톤치드를 그대로 담고 있는 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정밀한 성분을 추출해서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혜를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피톤치드의 주성분 테르펜의 엄청난 살균력과 방부력, 신진대사 촉진, 체내 독성물질과 노폐물 배출 기능을 가진 솔잎의 매력은 충분히 알았는데요. 송편을 찔 때 솔잎에 관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최근 소나무를 괴롭히고 있는 많은 해충들이 있습니다. 소나무재선충병, 솔나방, 솔잎혹파리 등 소나무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농약을 이용해서 방제를 실시하는데요. 이때 사용하는 농약은 방제에는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독성이 강한 농약이라 만약 솔잎에 남아있는 농약을 먹는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방제한 지역의 솔잎은 2년간 식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농약을 사용한 지역의 소나무를 보면 줄기 밑에서 높이 1m정도 부분에 지름 1㎝의 약제 주입을 위한 구멍이 뚫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곳곳에 현수막과 깃발이 걸려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만약 솔잎을 채취해야 할 경우에는 관계기관에 문의해 솔잎채취 제한지역 여부를 확인하고 관련규정에 따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퇴비는 소나무 근처에서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것은 소나무의 항균작용이 너무 강해 퇴비에 유익한 미생물까지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송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 지 헤아리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올해 추석은 긴 연휴만큼 몸에 좋은 송편을 먹으면서 그윽한 솔향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맛있는 송편 많이 드시면서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