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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거리/숲에서 만난 세상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임산물은?


달 밝은 가을밤이라는 뜻의 추석. 1년 동안 수확한 곡식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한 해를 잘 보낸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에는 하나하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좌포우혜,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을 따져가며 차례상을 차려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추석을 맞아 명절 차례상 차리는 법과 함께 차례상에 오르는 임산물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례는 조상을 숭배하기 위한 의례의 한 종류인 약식 제사입니다. 보통 제사와는 달리 아침에 지내기 때문에 촛불을 켜지 않고, 술은 한 번만 올립니다. 지역마다 차례 방법이나 음식을 놓는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기본적인 원칙은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과 살아있는 사람의 좌우를 바꿔 놓고 균형을 잡는 데 있습니다. 



<추석 차례상차림입니다. 송편이 올라가는 것이 큰 특징이죠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차례 상차림은 대개 5열로 차립니다. 각각의 열은 과거의 조상들이 먹어왔던 음식을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수렵•채집 시대에 먹었던 음식을 의미하는 과일과 나물, 채소를 맨 앞과 둘째 줄에 놓습니다. 그 뒤에는 불을 사용해 익혀 먹었던 것을 의미하는 음식인 전류, 농경 시대에 들어서면서 먹었던 주식과 반찬을 의미하는 탕, 적, 메(밥), 갱(국) 등이 나머지 세 줄에 놓는데요. 추석에는 1열에 메(밥) 대신 송편을 올립니다. 떡은 곡식으로 만든 것 중 가장 정결한 것으로 간주되어 차례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추석에 송편을 올리는 이유는 송편이 한해에서 가장 밝은 달밤인 한가위, 추석의 달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에는 소금 이외에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데, 자연의 맛에 가까운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김치도 흰 나박김치만 올리는데 깨끗하고 순수한 음식이 차례상에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차례상 제일 앞줄에는 과일과 약과, 강정을 둡니다. 이때 조율이시(棗栗梨枾)와 홍동백서(紅東白西), 들어보셨죠? 왼쪽부터 대추와 밤, 배, 곶감, 약과와 강정 순으로 놓고 사과와 같은 붉은 과일은 동쪽, 배 등 흰 과일은 서쪽에 두는 것을 의미하죠. 홍동백서는 흰 종류의 음식보다는 붉은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동쪽에 있는 음식은 서쪽 음식보다 더 먼저 자주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차례상 용어 의미 자세히 보기) 또한 예부터 지금까지 차례상의 앞줄에는 늘 대추와 밤이 있어왔는데요. 이 둘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대추는 꽃이 피면 그 자리에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습니다. 아무리 기후가 좋지 않더라도 꽃으로 피었다가 꽃으로 지는 경우가 없다고 해요. 나무 한 그루에 아주 많은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이를 자손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한국 결혼식에서는 폐백을 빠뜨리지 않는데 그때 시어른이 신부에게 대추를 던지는 것도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뜻입니다. 또한 대추씨는 통씨여서 절개, 순수한 혈통을 뜻합니다. 이 집안에서 왕이 될 수 있을만한 후손이 나오라는 뜻이죠. 대추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아는 것은 자손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차례상에서 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밤은 옛날부터 조상의 묘 주위에 과일 나무로 심었다고 해요. 세월이 지나 조상을 잊게 되더라도 밤을 까먹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는데요. 밤을 조상의 산소 주변에 많이 심는 이유는 밤이 자라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의 씨밤이 땅속에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고 줄기와 가지를 이루고 잎이 나서 하나의 밤나무가 될 때까지는 여느 식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 식물의 경우는 한 알의 씨앗이 썩어서 나무를 길러내면 그 최초의 씨앗은 썩어 사라지지만, 밤만은 땅속에 들어갔던 최초의 씨밤이 그 위의 나무가 아무리 큰 밤나무가 되어도 절대로 썩지 않는다고 하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 간에 최초의 씨앗이 된 밤은 생밤인 채로 오랫동안 달려 있습니다. 이 씨앗은 조상을 상징합니다. 후손이 얼마나 성장 했는지와 관계없이 나와 조상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밤을 차례상에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밤은 세 알이 한 밤송이를 이루는데요. 가운데 있는 밤이 영의정, 오른쪽에 있는 밤이 우의정, 좌측에 있는 밤은 좌의정이라는 당시 최고의 관직을 상징하여 후손들이 큰 일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는 밤은 뾰족한 가시가 돋친 채 밤알을 보존하다가 나중에 탁 터져 벌어지는 그 모습이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다가 "자. 이제 내 품에서 떠나라" 고 말하는 부모 같아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라" 는 뜻으로 제사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곶감이죠. 곶감을 올리는 이유는 감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질 때문입니다. 감을 먹고 난 뒤 나온 씨를 땅에 심으면 감나무가 자라지 않고 고욤나무가 나옵니다. 감 씨를 그냥 심기만 해서는 그 나무에 고욤이 열리지 감이 열리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나무는 어떻게 나올까요? 감 씨를 심어 자란 고욤나무가 3년에서 5년 정도 자란 뒤 고용나무 줄기를 대각선으로 흠집을 내고 거기에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 완전히 붙게 되면 그 이후에 감이 열립니다. 감나무의 이런 특성을 보며 우리 조상들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고 배우며 성장해야 비로소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붙였습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모든 것들이 이런 의미가 있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란 알면 알수록 고개가 숙여집니다. 


또한 차례상에 올라가는 삼색나물인 도라지와 고사리, 시금치가 있는데요. 이중 고사리는 대표적인 임산물입니다. 이 세 가지 나물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합니다. 뿌리채소 도라지는 조상, 줄기채소 고사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잎 채소인 시금치는 후손을 의미하죠. 고사리는 비타민A와 B₂, 칼슘, 칼륨이 풍부해 자양강장, 해열 등의 한약재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차례상에 올라가는 임산물들은 음식에 담긴 의미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 영양식으로 남녀노소, 어른, 아이 모두에게 이로운 음식입니다.





밤이 어두우면 위험했던 고대 시대, 밝은 보름달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고마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 달 아래에서 축제를 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게 느껴지는데요. 한해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이 뜨는 추석을 큰 명절로 정해 축하하며 조상들을 잊지 않는 의례를 지내온 우리 민족의 의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나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조상들의 차례상에 오르는 밤과 대추에 담겨 있는 의미를 살펴보니 더욱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추석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