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이나 조선왕릉에서 알 수 있죠. 최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장묘문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수목장(樹木葬)입니다. 수목장은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섭리에 따라 사람이 죽은 뒤 화장한 유골을 지정된 나무의 밑이나 주위에 묻어 수목과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사법입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가족구조가 바뀌면서 자연친화적이고 비용부담이 적은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04년 고려대학교 연습림에 치러진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최초의 수목장) /출처: 춘천호반수목장>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반가운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에 묘지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면적의 1.6배가 묘지라고 하는데요. 고인이 수목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수목장은 울타리나 비석 등 인공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는 식별 표식만을 남기기 때문에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며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줄 수 있는 장묘 문화입니다.
<2009년 문을 연 국내 첫 국유수목장림인 양평 하늘숲추모원. 당일 제1호 안치자가 안치되는 모습. /출처: 산림청>
수목장의 종류로는 매장형, 산골형, 묘지개발형 수목장이 있습니다. 매장형 수목장은 말 그대로 시신을 나무 아래 직접 매장하는 방식입니다. 수목 주위에 봉분이나 비석없이 매장하는 대표적인 자연주의 매장방법이지요. 산골형 수목장이란 화장한 유골을 곱게 분쇄하여 환경분해용 용기에 담거나 용기없이 유골을 흙과 섞어 나무 밑이나 주위에 묻는 방법입니다. 묘지개발형 수목장은 기존의 묘지에 설치되어 있는 비석과 같은 가공물을 철거하고, 무덤 정리 및 조경작업을 통해 원래의 자연녹지로 환원시키는 수목장입니다.
수목장에 쓰이는 나무 종류는 굴참나무, 떡갈나무, 물박달나무, 밤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음나무, 잣나무, 층층나무, 피나무 등이 있습니다. 경사 25˚이내의 산지에 1ha당 100그루 이상의 추모목을 심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늘숲추모원은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국내 첫 국유 수목장림입니다 /출처: 네이버여행>
수목장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많은 면적이 필요 없고 나무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묻는 것이라 묘지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또한 가족단위로 이용하면 쉽게 유지관리가 가능합니다. 묏자리 부족과 환경문제를 해결하여 국토훼손을 막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입니다. 후손들이 찾아와 나무를 가꾸기 때문에 더 좋은 숲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독일이나 스위스, 일본, 영국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목장을 선택한다고 하네요.
<고 민병갈 박사를 추모하는 나무입니다. 고인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수목장을 했습니다>
국내에서 ‘수목장 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고 민병갈 박사의 수목장입니다. 민병갈 박사는 1979년 미국에서 귀화해 충남 태안 천리포 일대의 민둥산에 개인의 재산을 털어 국내 최초의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설립자입니다.
민병갈 박사는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라. 묘 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나무를 사랑했는데요. 지난 2012년 4월, 서거 10년 만에 나무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서거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뜻에 따라 천리포수목원 내 비공개 지역에 안치되어 있던 유골을 수습해 수목장으로 치룬 것인데요. 고인이 살아생전 좋아했던 목련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나무 아래 잠든 민병갈 박사의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민병갈 박사의 수목장에서는 올바른 수목장의 절차와 방법이 소개되었습니다. 민병갈 박사의 수목장 진행을 도운 (사)수목장실천회는 수목장을 실시할 때 해당 나무(큰 나무 기준) 아래 깊이와 너비를 약 50cm 정도 판 다음 꽃잎을 충분히 준비하여 바닥에 뿌리고, 잘 썩는 용기에 유골을 담아 준비한 꽃잎과 혼합한 흙으로 덮은 후 주변을 평평하게 정리하는 절차를 소개했습니다. 특히 땅을 팔 경우 나무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하고 썩지 않는 도자기 등의 유골함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을 전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민간이 자연친화적 사설 수목장 시설을 설치할 때 정부로부터 장기저리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답니다. 산림청은 묘지발생에 따른 산림훼손의 최소화를 위해 자연친화적 사설 수목장림 조성 자금 8억원을 융자 지원하고 있습니다.
수목장림 관리 운영계획을 허가 받은 자일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요. 수목장 설계 금액의 80% 범위에서 연리 3%, 10년 거치, 10년 균등 분할 상환 조건입니다. 그러나 융자를 받으려면 총 사업비의 20% 이상을 스스로 부담할 수 있고 상환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연중 수시로 접수하고 있고, 사업 소재지 시•군 산림조합에서 상의하면 됩니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에 해당하는 900ha의 묘지가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묘지 조성과 납골당 설치로 인해 국토의 소중한 산림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수목장은 새로운 장묘문화의 대안이 될 자격이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 시작인만큼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면 묘지발생에 따른 산림훼손이 줄어 들 것으로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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